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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인재 기고] 금융권 여성들은 어떻게 '가혹한 시대'를 견뎠나?
등록일 2018.08.29 조회수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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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재 기고] 금융권 여성들은 어떻게 '가혹한 시대'를 견뎠나?

- 높기만 한 '유리천장 지수', 한국 OECD 28개국 중 최하위 -

 

 김 상 경

· 한국국제금융연수원(주) 원장, (사)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현)

 

※ 글쓴이 소개

국내 최초의 '여성 외환 딜러'이며, 금융위원회 소관 사단법인 '여성금융인네트워크'의 회장으로서 '금융권 내 여성금융인 리더 확장'을 목표로 월례모임, 리더십 교육 및 세미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양성평등 진흥을 위한 공적을 인정받아, 2018년 양성평등주간 기념식(7. 7)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지난 수십 년간, 금융권의 여성들은 가장 먼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이들의 직장생활 역사는 ‘고난’과 ‘격동’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당연히 시대의 제약을 받으면서, 때로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때로는 현실에 저항해야만 했다. 금융권의 더 나은 여성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누리기 위해 이들은 어떤 변화를 모색해 왔을까? 이것이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이에 1970년대 중반부터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내가 겪었던 삶의 이력과 성취, 또한 그 시대의 국내 금융권 여성들이 그들의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주제에 대한 암시를 얻고자 한다. 여기서 ‘금융권’이란 은행을 말한다. 은행은 금융권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가진 업종이기 때문이다.


1971년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당시 ‘미혼 여성만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혼퇴직각서」 제도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밥하고, 빨래하고,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인생을 온통 맡기는 여자의 삶의 방식이 싫었다. 나는 늘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남편 복‘과 ’자식 복‘이 전부”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이렇게 사는 여자들이 무능하게만 보였다. 나는 결혼해서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외국계 직장을 선택하였고,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에 금융권의 더 나은 여성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 1975년에 북경에서 열렸던 『세계여성대회』에 앞서, 이필영 전 우리은행(옛 상업은행) 지점장과 몇몇 여성이 중심이 되어 국내은행의 「여행원」(여성 행원)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당시에 공기업인 한국은행마저도 여성은 결혼과는 관계없이 30세가 되면 그만두어야 했고, ‘대리시험을 칠 자격이 없다’는 은행 내규도 있었다고 한다.


1976년의 북경 세계여성대회를 계기로, 여행원의 결혼퇴직각서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당시 은행권의 취업 시장에서 남성은 일반직 행원으로 채용되었지만, 여성은 여행원으로 분리 채용되면서 근본적으로 승진과 임금에서의 차별이 당연시되었다.


이러한 관행은 1992년 10월에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으로는’ 폐지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전국 33개 은행 중 여행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29개 은행에게 “여행원 제도를 모두 폐지하라”고 권고하였다. 은행 최초로 제일은행이 나서 여행원 제도를 조건 없이 폐지하기로 하면서, 다른 은행들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여행원 제도는 1993년에 국가에 의한 법 제정을 통해 강제적으로 폐지되었다. 최고 경영진은 “여행원은 생리ㆍ출산휴가, 예금유치를 위한 고객접대, 출장, 숙직 등에서 남행원과 많은 차이가 나, 남성을 뽑는 것이 금융기관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제도 하에서, 여행원은 근속 10년이면 소정의 시험을 치러 ‘초급 행원’ 으로 비로소 신분 전환이 가능해져 남행원들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귀족-평민’과 같은 계급이 존재하면서 귀족은 남성, 평민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임금ㆍ배치ㆍ승진의 차별이 계속 이어지자, 모 은행 노조의 진정으로 2005년에 노동부(서울지방노동청)는 “성차별적 요소가 충분하다”는 판단 아래 은행권에게 이를 시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국내 은행권은 「행원A」와 「행원B」를 분리 채용하여, 행원B(전담 텔러)는 ‘24~25살 이하’로 연령을 제한하면서 군필ㆍ대졸 남성은 지원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이 대부분인 행원B와 남성이 대부분인 행원A의 임금 차별로 이어졌다.


이후 노동부는 “특정 성이 다른 한 성에 비해 현저히 많은 것이 인정되고 그 특정 성에 대해 불이익을 준 측면이 보이는 바,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근거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나 정당성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결정은 2001년에 전면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를 두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한 성에 비해 현저히 적고 그로 인해 특정 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 기준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할 수 없을 경우 ‘차별’로 본다”고 규정하였다. 이에 은행 측은 “채용 단계부터 분리해 모집하고, 채용 후에도 별도의 인사 시스템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은행은 “단지 행원B 채용 시 여성이 많이 지원하여 채용되므로, 결과적으로 의도적인 성 차별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한번 정해진 신분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번 행원B가 되면 행원A의 종합직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고, 승진도 종합직과는 별개의 라인을 타고 올라간다. 이에 노조 측은 “종합직(행원A)은 행원에서 과장급 책임자로 승진하는 데에 6년 정도 걸리는 반면, 행원B는 19년이 걸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행원 대부분이 여성인 반면, 관리자급은 남성이 되었다. 이에 노동부는 “행원AㆍB의 책임자 승진 시 승진 인원,ㆍ경로 및 대우상의 차이를 두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근로자에 비해 여성근로자를 불리하게 대우한 것”이라며 시정하라고 지시하였다.


에 은행권은 바로 「직군제」를 도입하였다. 이는 비정규직의 직군을 정규직과 분리하여,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 차별은 유지할 수 있는 제도이다. 또한, 정규직과 직군이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법에 명시된 ‘동일업무 동일임금'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행은 2007년에 직군제를 도입하여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1980년대의 여행원 제도의 부활과 다름없었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임금 차별은 물론 승진의 한계 때문에 잘해야 ‘만년 과장'으로 퇴임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직군제 도입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성 금융인 중 30대는 48%에 이르지만 40대로 가면 17%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의 경우 40대 이상이 57%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조적인 통계를 내놓았다. 이와 같은 환경은 모두 직군제 도입으로 발생된 결과로 보인다.


현재 금융권의 직장환경은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을 혹사하여 쓰러질 때까지 일하면서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성공을 위해 과로를 요구하는’ 남성적인 업무 방식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적인 문화는, 유능한 여성이 결국 직장을 40대에 그만두어야 하는 환경이 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금융권은 「분기별 수익보고서」에 집착하면서, 단기수익을 극대화하여 이익을 초과 달성하려는 남성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은 ‘성공’이라는 개념을 달리하고 있다. 이제는 남녀 불문하고 ‘개인적인 삶까지 희생하며 기업을 위해 자신을 혹사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 더 나은 세상을 누리려면, 건강한 사람들이 기업에 남아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성공’의 개념을 바꾸는 것을 이제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


2017년 「여성금융인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라가르드 총재(IMF)는 “한국 여성들은 그간 국내외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으나, 수많은 장애물과 편견에 가로막혀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남녀 경제활동이 같아지면 경제성장률이 1%p 상승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He가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고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여성과 함께 노력하는 남성들, 즉 「HeForShe」가 많이 늘어나 직장에서 평등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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