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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인재 기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인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1)
등록일 2019.03.20 조회수 305
첨부파일

[여성인재 기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인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황 은 정
· 행정학 박사 / 이화여자대학교 리더십개발원 연구위원(현)

· 서울시, 인천시 성별영향평가 컨설턴트(현)

(2018년 제13회 성별영향분석평가 우수 컨설턴트 여성가족부장관 표창)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포털사이트에서 ‘여성인재’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컨퍼런스를 진행했다거나 여성인재 지원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기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 기사들 아래로 조금만 더 스크롤을 내려 보면 “유리천장 깨고 여성인재 양성해야”, “여성인재 모집...경단녀 지원가능”, “△△그룹, 여성인재 육성 불구 사내 등기임원 전무”이라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즉 “#여성인재‘라는 해시태그에는 여성이 미래 산업의 경쟁력, 여성의 역량강화, 여성인력개발이라는 키워드와 유리천장, 경력단절, 여성임원 부재라는 키워드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남성인재는 어떨까? ‘남성인재’라는 용어 자체가 따로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실제로 많은 경우 ‘인재’라는 단어 앞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 생략되어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이외에도 전문, 해외, 이공계, 고급 등의 수식어가 인재라는 말 앞에는 다양하게 따라다님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인재일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재의 사전적 정의라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여자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인재풀인 ‘여성인재DB’에 등재된 시점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작년 가을쯤이었다. 나는 초중고를 제외하고 대학원만 무려 14년을 다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 셈이다. 그나마 내 나이에서 앞자리 숫자가 3에서 4로 바뀌기 전에 졸업하게 된 걸 감사한다고 해야 할까?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준비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대학원으로 진학했으나, 남들보다 이른 결혼과 임신, 육아로 점철된 석박사과정은 그 시기의 에피소드만 엮어서 책 몇 권은 낼 수 있을 정도로 다사다난했다.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에 가까운 것이기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는 산후우울증과 모유수유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출산이후 두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한 지금까지도 일 가정 양립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 침잠해있다.


 만약 비슷한 생애주기를 거친 여자 선생님들의 조언, 선후배 및 주변 동료들의 격려와 배려가 없었다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육아의 현실 속에서 곤두박질 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책을 읽고 논문을 쓴다는 건 누군가에게 육아나 가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여전히 어렵다. 내가 꿈꾸던 정책연구자가 되기 위해 박사논문을 쓰는 11년 동안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었다.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등록금을 조달하기 위해 각종 프로젝트와 조교업무를 쉬지 않았음에도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연구자로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이 늘 나를 괴롭혔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경력 단절이 아닐까. 강의 및 프로젝트(경제적 활동)는 하고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책무를 고려한다면, 나는 오랜 시간 연구 경력 단절을 경험하였던 셈이다. 반면 내가 그 시기동안 내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혹은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 때로는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뛰어들었던 활동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내가 여성인재라고 불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음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나아가 투자가 필요하다. 잘 알다시피 전문성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이 인재가 되기 위한 길은 남성의 그것과 같지 않다. 일례로 ‘사회진출’이라는 표현은 여성에게만 주로 사용된다. 즉, 여성이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데, 일례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대학진학률은 남학생보다 높지만 졸업 후 취업은 남성들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여성들(women)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 증가와 경력 단절 방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음을 뜻하는 ‘우머노믹스(womenomics)’가 최근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어렵게 한 취업이라도 출산과 육아부담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로 인해 20대에서 30대로 들어설수록 급감하는 여성경제활동률은 여성들의 경력단절 현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육아하는 여성’의 경력단절 원인이 ‘육아’로만 한정되어 공론화되는 방식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이 노동력 증가와 경제적 이익 창출이라는 국가와 기업 경제 성장의 차원으로만 치우쳐져 공론화되는 것 역시 우려되는 지점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주 양육자의 경력 단절, 즉 미래 여성인재들의 경력단절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체의 과제로서 이는 경제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자아존중감 및 사회적 소속감이라는 정체성 차원에서 다 같이 해결해 나가야할 지점이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겠지만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특히 공부에는 즉각적인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기에 대학원이란 공간은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학문의 장인 동시에 그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과 사회적 소속감을 만들고 공유하고 유지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학문으로서의 직업’을 목표로 하는 대학원에서는 주 양육자의 학업 및 연구 경력 단절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학교의 보육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엄마와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지켜갈 수 있을까? 혹은 지켜나가고 있을까?

 

 이에 최근 모 대학에서는 ‘스터딩맘(스터딩대디)’의 현실을 고민하며 아이를 가진 대학원생들이 ‘부모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부와 육아에 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고, 공동 육아와 품앗이를 기획하는 등 육아와 연구가 ‘충돌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을 창출하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아기 동반 도서관 출입 허가나 학내 수유실 마련과 같은 실질적인 성과도 얻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일이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학문 공동체의 문제라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인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닦여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선구자(frontier)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아직도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며 스스로 전문직업인 또는 인재라는 정체성을 갖기까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장벽과 장애물, 편견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기고 글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인재들의 고군분투기, 혹은 희망편지라는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더 이상 기고에만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여성인재들이 사회곳곳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며, 우리가 바라고 희망하는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더불어 여성인재들 모두 앞으로는 꽃길만 걷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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