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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인재 기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인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2)
등록일 2019.03.20 조회수 280
첨부파일

[여성인재 기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인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류 은 영
ㆍ여성인재DB(국가인재DB) 등재자
ㆍ국토교통부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17∼)ㆍ기업형임대주택통합심의위원회(’18∼) 위원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도 여학생의 비율이 50%를 넘어 남학생보다 증가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점차 더 많은 여성인재들이 활약하고 있고 공과대학의 여학생 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유독 건설 분야에서는 여성기술인들이 드물다. 사실 건설 분야는 여성들이 활동하기가 어려웠던 분야이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업무도 제한되어 왔다. 또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도 어렵다보니, 여성 건설기술인의 수가 적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과거에는 여성들이 많은 차별을 받아왔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 세대 1970년대의 고교 졸업자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10%였고,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남학생의 10%에 불과했다. 그것도 주로 인문계에 국한되었고 이공계는 여학생이 드물었다. 모든 것이 남성 위주였고,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은 ‘자격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여성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마저도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 남성 중심의 시대에도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시절에는 성적우수 장학금을 4년 동안 매학기 받았고, 졸업할 때에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공부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방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과학재단에서 주는 연구비로 공부했으며, 미국 걸프장학금도 받았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1980년대 초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성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열정으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반도 및 동아시아 고환경 변화 연구’로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유일한 여성과학자로 평가받았지만, 국내 기초과학에 대한 열악한 환경과 관심 부족으로 실험실조차 확보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과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그때도 여성 우대정책이 있긴 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일자리가 남성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지반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건설기술자로서의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다행히 최근 첨단과학에 근거해 기술을 전개하고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공존함에 따라 이를 산업분야에 제공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의 양성이 요구되면서, 그동안 해왔던 연구는 지반기술자로서의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절망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대도 빠르게 변하여 지금은 여건도 많이 좋아지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지만, 지금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특정 분야에서만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공과대학 여학생 수도 과거와 다르게 증가했지만 아직도 여성 건설기술인은 드물다. 험하고 힘든 일이다 보니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가 제한되어 왔고, 기업에서도 남성 기술자를 선호하게 되어 여성 건설기술인들의 수가 드문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의 여성기술인들의 수가 워낙 적다보니 그 희소성으로 지금은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고 있긴 하다. 그렇게 열심히 했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내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동기 남학생들이 승승장구할 때, 남녀차별에 대한 불평불만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내 할 일을 찾아서 해온 결과이다. 좌절감과 절망감에서 다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쓴맛과 신맛을 다 경험했고, 모든 자존심을 다 벗어버리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해서 아이 둘을 훌륭하게 키웠고, 어려운 시기도 많았지만 잘 극복했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 심의위원들과 함께 건설기술심의와 지하안전영향평가, 사전재해영향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암울한 세월을 잘 극복한 결과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은 ‘자격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인 그 시대를 살아온 성공한 남성들의 자신감을 보면 부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전국의 다양한 현장을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알고 있는 풍부한 현장 경험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금은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내가 부족한 부분을 가능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과 같다고 한다. 찌는 태양과 타는 목마름으로 괴로울 때도 있고, 길거리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지만 한발 한발 내달리다보면 결승점이 저만치 보일 것이라는 확신으로 지금까지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그 힘든 세월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성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 세대는 모든 일자리가 “군필 남성에 한함”이란 단서가 붙어서 여성들은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고, 남성을 더 우대해오던 기존의 사회흐름 속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려왔다. ‘양성평등’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대였으므로 남녀차별 정책들도 여성들은 당연시 여기던 시절이어서, 오로지 남성들끼리만 경쟁하면 되는 시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그런 시대를 오랫동안 살아왔던 과거 우리 세대 여성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여성들은 보다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특정 분야에서만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그렇지 않은 분야도 많은 것 같다.


 그중에는 여성들이 여전히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지만, 여성들이 기피해서 여성의 수가 적은 분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 기피하는 분야라 하더라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에게 ‘우리도 할 수 있고, 우리도 한다’는 당당하고 분명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채용, 승진이나 사회적 인정에 있어 결코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차이를 인정하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여성할당제’ 등 정책적ㆍ인위적으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보다는 여성 스스로의 능력과 역량, 진취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에서,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여성들의 역량과 노력만으로도 여전히 사회적ㆍ구조적으로 여성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에, 이를 걷어내기 위한 정책적 수단의 취지와 필요성 또한 이해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양성평등이 실현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현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모쪼록, 하루빨리 남녀 모두 성별 그 자체가 아닌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양성평등한 사회, 양성평등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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