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대한다!”
기고자 : 이 지 향
ㆍ (현) 세종문화회관 E.S.추진단 위원
ㆍ 공연예술학 박사 (국내 ‘공연예술 저작권’ 분야 박사학위 1호)
ㆍ 여성가족부ㆍ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청년여성 멘토링」 멘토 참여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려는 부탁은,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 달라는 것뿐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가정과 사회와, 제도와 법의 잣대가 성별로 그어져 있던 한 시대를 살아 내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노력해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불평등한 세상을 반대로 바꾸며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여성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기고 싶다면 소리치지 마라! 사람들이 돌아서면 토론하기를 꺼릴 것이다!” 60세에 미 연방 대법관이 되면서도 잊지 않는 ‘이기는 법’이라고 합니다.
‘branded inferior(열등하다는 낙인)’, ‘subordinate(종속적인)’, ‘waste of human resources(인적 자원의 낭비)’, ‘dependent(의존적인)’, ‘to weak to vote(너무 약해서 투표할 수 없는)’... 이러한 언어들로 ‘여성(woman)’이 정의되어진 제도적 선을 그어 놓았던 시대를 살아오면서, 성별로 구분되는 차별의 경계를 없애고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그녀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법을 향해 설득해왔습니다.
“나는 반대한다!”, “차별적인 선을 그으면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해를 입게 됩니다.” 루스는 여성의 역할과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차별적 선은 필연적으로 여성에게 불합리함을 가져오게 된다’고, 그래서 ‘법이 변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성별’이라는 기준에 맞춰 특정한 역할자로 여성을 정의하고 있는 ‘법(law)’에게 끊임없이 설명했습니다.
1970년대 법조인들은 모두가 남성이었고 그들은 ‘성차별이란 건 없다’고 여겼을 테니, 아마도 그녀는 법 앞에 맞서면서 유치원생들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쉽게, 조목조목, 조용히, 분노하지 않고 어머니에게서 배운 ‘이기는 방법’을 동원해서 설명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남녀는 동등하게 존엄한 인간이니, 양자는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양성평등’의 핵심적 요소는 ‘여성의 선택권과 의사결정권’이며, ‘동등한 법의 보호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모두에게 같은 제도와 규범과 룰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성도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그녀의 소송이 승소하기 전까지는 여성에게만 지급), 버지니아 군사대학의 여성 입대가 가능해야 하며(개교 이래 1996년까지 157년간 남성만 입학), 공군의 여군이 주택수당(그녀의 소송이 승소하기 전까지는 남성에게만 지급)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별 앞에 동일한 선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대법관 전원이 남성인 것은 ’당연‘했고 여성 대법관 두 명이 임명되는 것은 ’세상을 들었다 놓을 만한 빅 뉴스‘였던 시대를 살아온 한 여성 법조인으로서, 현재와 미래를 위해 최선의 법을 고민한 그녀였습니다.
오늘날 여성의 법적 지위는 1970년대에 그녀에게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60세에 미 연방 대법관이 된 그녀는 말합니다. “여성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반대 의견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으로 여성이 다른 잣대로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던 시절을 지내왔습니다. 1970년을 기점으로 제도적 변화를 조금씩 경험하면서 여성들은 조금 나아진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편견에 맞서야 했습니다. 제도는 변해왔지만, 그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한 편견은 ‘꽤 오래된 제도’로 포장되어 여성들에 대한 여전한 차별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복장’, ‘미인계’ 등 영화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더욱 흔하게 보아 와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법과 제도가 바뀌어도 인식이 쉽게 변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선이 존재하고 우리 윗세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왜 당연하게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습니까?”라고 루스 대법관이 귓전에서 되묻는 듯합니다. “왜 반대하지 않습니까?”라고...
비로소 저는 여성으로서, 사회에서의 평가 및 가정에서의 역할에서 많은 제도와 편견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음을 생생히 느끼고 있습니다(적어도 제가 세탁기 돌리는 법을 남편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이만큼 변했으니 이제는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특별함’이 아니라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생물 분류학상으로 ‘사람’이라는 것이 인식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잘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루스 대법관이 그랬던 것처럼...!
우연이라고,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지금까지 여성 대표가 선임된 적이 없었습니다.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이 50%를 넘은 적도 없었습니다. 개관한 지 41년이 지났고 재단법인화 20년을 맞이하는 2019년 7월이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그러나 타 기관들에 비해 선도적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시작했고, 남성의 육아휴직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법에 의해서든 소신에 의해서든 동등한 기회들이 조금씩 주어지고 있는 2019년! 저는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여성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성별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버드 법대는 1819년 법과대학이 문을 열면서 양성의 비율이 5:5가 되기까지 2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을 것입니다.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법적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 시대가 왔고, 성별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줄었습니다. 특별한 사명을 안고 태어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저는 루스가 태생부터 사명을 타고 났다고 믿고 싶습니다)가 지난 50여년 간 여성들의 용감함을 대변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성별에 의한 차별 앞에서 분노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 기회가 ‘교육의 기회’라 생각하며 “나는 반대한다!”라고 용감하게 외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200년이 있을 테니까요.
‘여성의 언어로 이 시대를 써내려가자’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지켜보십시오!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양성을 동등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위협적으로 읽혀지길 기대해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