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재 기고]
“여성이사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여성인재 역할”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여성인재, 여성임원
기고자 : 전 미 진
ㆍ (현) 이화여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ㆍ (전) 법무법인 율촌 기획팀 부장
2020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본시장법에 의하면 자산총액이 2조이상 상장사에서 이사회를 구성할 때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어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상장사는 143개인데 이 가운데 79%인 114개는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여성 등기 임원이 없어서 사외이사를 통해 충원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초연결 디지털 플랫폼 시대로 급격한 진화를 겪고 있다. 다양한 인재들이 협업하여 비범함을 성취하는 것이 경쟁력이며, 창의적 문제해결에 있어서도 서로를 협업의 파트너로 환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인재를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로 육성하는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당사자인 여성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환경에 대해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성중심 리더십과 제도적 상황을 넘어서, 진화생물학적 분업이나 젠더 정치학에서의 투쟁적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조직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적과 성공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남녀가 상호 협력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로 진일보해야 한다.
어쩌면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성 평등의 역설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2018년 76개국 80만 명을 대상으로 아민 포크(Armin Falk)와 요하네스 허밀(Johannes Hermle)에 의해 수행된 연구에 의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예상과 달리 성적 고정관념이 심화되고 직업에 있어 남녀선호도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성이 평등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통적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사나 사회복지 등 분야의 직업을 더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가정친화적 제도나 기타 차별적 요소를 제한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갖추어놓고 조직이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제도적 편리성이 주는 제도화의 덫에 갇힐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타난다. 이는 기존의 젠더 정치학자들의 논증은 직업, 직무, 직급 등에서 차별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던 남녀의 불공정한 분리선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하였지만 이제는 평등 이후 실현될 미래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부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회를 가지게 된 여성들이 제도적 남녀평등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미래의 번성을 위해 상호협력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직과 개인차원에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CEO나 기타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성공한 국내외 여성임원들이 전하는 공통된 목소리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들 역시 시작은 다른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가면 증후군 문제와 돌봄의 사회화에 대한 제도적 문제 등 남성 지배적인 조직에서 부과되는 상황을 겪어내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여 차이를 일구어낸 여성 리더들이다. 다음은 이들이 각 종 매체에 인터뷰한 기사들을 분석하여 나타난 공통적인 내용들이다.
첫째, 자신의 전문성을 기르고 유지하는 경력관리에 힘썼으며 그러한 실력과 전문성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을 위해 끝까지 버티었다고 고백하였다. 전문영역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임했으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성심껏 수행해 보려는 자세로 인해 기업의 파트너로 키워야 할 내 집단 인재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둘째, 경력 초기에 이들은 여성의 정체성보다는 남성성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바꿔가려고 노력했으나 경력이 쌓여 갈수록 여성성을 꼭 숨기고 포기해야 할 정체성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직장에서 여성성은 포기해야 할 성 정체성이 아니며, 남성 지배적 분위기에 끼워져 새로운 영역의 차별적 맥락을 만들어 나갈 때 더 생산적이라고 말한다.
셋째, 자신의 존재의미를 사회와 공동체에 차별적으로 기여한다는 기업의 더 큰 목적과 사명에 연결하고자 노력하였다. 다양성 문제나 조직 정치 등 남성중심 조직에서 당면하게 되는 이슈들을 해결함에 있어 조직의 사명과 목적이라는 더 높은 구심점에 몰입함으로써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통합할 수 있었다.
넷째, 자신의 개인적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 후배들과 능력이 뛰어나지만 소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변자로 나서기도 했으며 직접 멘토로 나서기를 자처하였다. 남성지배적 구조 하에서 이러한 주변인들을 포용하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씀으로서 여성의 이슈를 넘어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여성 리더들은 스스로 그저 조용히 버텼다고 고백하지만, 사실상 이들의 행보는 소수자, 약자로서 조용한 혁명가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가 어떠한 이유로든 멈추고, 건전한 여성인재 육성의 파이프라인이 구축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마음이다. 여성 리더들 역시 제도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공동의 목적과 성공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멋지게 성장하기를 응원한다.